
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?
어제 자림이와 데이미언 허스트 전을 보러 갔다. 엄청난 인파였고, 입장까지 한참을 줄 서서 기다렸다.
작품을 차례로 둘러보다 전시 중앙에서 발이 멈췄다.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공, 그리고 소머리와 파리떼.
그중 소머리가 가장 충격적이었다. 유리장 안에서 실제로 썩어가는 소머리, 그 위를 맴도는 파리는 박제도 모형도 아닌 진짜였기 때문이다.
구더기가 부화해 파리가 되고, 소머리를 먹고 살다가, 머리 위 살충기에 죽는다. 작가의 의도를 알고 봤기에 충격이 덜했을 뿐, 모르고 봤다면 나는 역겨움과 징그러움만 느끼고 돌아섰을 것이다.
그렇다면 나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나? 죽음과 탄생, 그 순환 같은 것.
문득 작품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. 저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. 말풍선처럼 속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, 각자 자기 안에 어떤 생각을 품은 채 작품 앞에 서 있을 것이다.
“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.” 보이는 그대로만 판단하면, 어쩌면 그 너머의 무언가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.
나는 소머리에서 파리를 보았나, 아니면 죽음을 보았나?
— 데이미언 허스트, 〈A Thousand Years〉, 1990
'[생각 정리] 100일의 기록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[생각 정리] 멈춤과 비교, 내가 망하는 두 가지 길 (D-55) (0) | 2026.06.27 |
|---|---|
| 불안 속 하루, 그래도 다행한 것들 (0) | 2026.06.26 |
| [생각 정리] 떡볶이 한 접시가 행복이라니 (D-58) (0) | 2026.06.24 |
| [생각 정리] 벽 (D-59) (0) | 2026.06.23 |
| [생각 정리] 내면의 소리 (D-60) (0) | 2026.06.22 |